이번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면서도 희대에 두루두루 이야기가 나오는 희대의 살인마들을 한번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1. 아틸라 (로마 406~453)
"응징의 신"으로 더욱 많이 알려진 훈족에 아틸라 왕은 로마 제국 말기 유럽을 침공했던 무자비한 폭군 이였습니다. 아틸라와 그의 형제 였던 블레드와 함께 용맹스럽기로 많이 알려진 유목민족이였던 훈족에 공동의 통치자였습니다. 세기 전반으로 민족대이동시기에 현재 헝가리인 트란실바니아를 거점으로 두고 주변의 게르만 부족, 동고트족을 무릎꿇게하였으며 동쪽으로는 카스피해에서 서쪽으로는 라인강에 이르는 지역까지 지배하여 엄청난 제국을 건설하였습니다.
동로마를 위협하여 조공및 각종 부당한 이득을 챙겼으며, 갈리아를 침입하여 오를레앙을 공격하였습니다. 이에 대해서 서로마는 서고트 및 프랑크와 동맹군들을 규합하여 맞서 싸우려고도 하였습니다.
아틸라는 철군을 명령하고 돌아오는 길에 마우리아쿠스의 벌판에서 연합동맹군들에게 패하여 서유럽의 정복을 포기하고 다시 본거지로 귀환하였습니다.
이맘때쯤 북이탈리아에 침입하여 로마를 정복하기 이르렀지만 로마교황 레오 1세의 설득으로 인하여 철군하였고 다시 한번 귀환하여 다시한번 동로마 정복을 시도하였으나 결국은 급사하여 제국또한 붕괴되고 말았습니다.
그가 전쟁에서 항상 하는 말은 "남의 패배는 나의 성공이다."라고 하며 자기자신을 높이고자 했던 정치가 였습니다. 그는 전쟁이 한창일때 수만은 로마인과 게르만인들을 잔혹하게 학살하며 그 살인자체에 희열을 느끼며 양심의 가책또한 느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한 부상당한 병사는 가차 없이 죽여버렸다고 합니다.
2. 블라드 더 임펠러(15세기~?)
이름만 들었을때는 생소하게 들릴것입니다. 그러나 이 인물의 다른 이름을 들으면 아하라고 말을 하실 것입니다. 그는 바로 오늘날 공포영화에서 빠질 수 없는 캐릭터인 드라큘라 백작입니다.
루마니아의 블라드 "드라큘라"라는 인물인데요. 15세기의 루마니아 역사에서 절대 빠트릴 수 없는 인물일 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드라큘라라는 이야기를 탄생시킨 인물입니다.
그는 무려 10만여명에 달하는 백성을 학살한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이 인물은 큰업적이 있었는데요.. 루마니아를 오스만 투르크로부터 지켜낸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루마니아의 영웅이였지만 블러드 3세 블러드 체페슈,블러드 드라큘라, 블러드 더 임펠러 등으로 불려졌습니다. 그는 왈카키아 공작이였으며, 루마니아 공국의 둘째 왕자였습니다. 오스만제국으로부터 협박을 받게되자 사절단으로 온 상대국 사람들을 꼬챙이에 끼워 죽임으로 화답을 하였습니다. 그는 산에다가 튼튼한 성을 지어 대비하였으며 오스만 제국이 10만여명의 침공을 감행하자 수천여명의 병사들을 모아 대항하였습니다.
그는 게릴라전의 귀재로 유명하였기에 엄청난 인원으로 인해 수적 열세임에도 불고하고 기습을 하여 오스만을 번번이 격파 하였습니다. 또한 수만여명의 포로들을 꼬챙이에 꿰어 매달아 적의 사기를 꺾었습니다.
이것말고도 굵은 가시가 박힌 큰 바퀴를 사람몸위로 지나가게 하여 온몸에 구멍을 만들기도 하였으며 장대를 깍아서 만든 창으로 항문을 찔러 입으로 나오게 하는등의 잔인한 처형도 서슴치 않았습니다. 이것으로 인해 그는 세계적인 살인마중에 당당히 이름이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잔인한 처형장면을 식사를 하면서 보곤 했다니 대단하다는 말밖에 할말이 없네요. 그러나 국가와 국민을 위해 나라를 지킨 영응으로 아직까지 루마니아 사람들에게 추앙을 받는다고 합니다. 아이러니 하지요...
3. 엘리자베스 바토리(1560~1614)
16세기경에 살고 있던 바토리 가문의 "피의 여왕" 유럽에서도 아주 유명한 가문이였습니다. 하지만 유명한 만큼 문제도 많았습니다. 근친상간으로 인하여 많은 유전병들이 걸리기도 하였던 가문이였습니다. 사실 근친상간을 한 이유는 만대한 유산과 부를 유지하기 위해 근친결혼을 한것입니다. 하여 이런 유전적인 요인때문인지 유달리 정신이상자가 많았다고 합니다.
엘리자베스 바토리는 그러한 가문의 영향력을 고스란히 받고 태어났습니다. 외삼촌들이 헝가리 귀족과 폴란드 왕 트랜스베니아 공작이였으며 가족들은 공작,백작,왕,주교등 여러 권력이 있는 구조로 이어져온 막강한 가문이였습니다. 이런 엄청난 가문에서 태어난 엘리자베스는 어린시절부터 그에 걸맞는 교육들을 받으며 자랐으며, 그리스어,라틴어,독일어등을 배웠으며 예의범절이 잘 되어있고 성격또한 똑 부러지는 여성으로 성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유전병으로 인해서인지 어린시절 종종발작증세를 보이기도 하며 두통을 자주 호소하였다고 합니다.
14세에 이르러서는 페렉 나다스디라는 귀족과 혼인을 하게 되었으며 엄청난 부를 가지고 있었기에 결혼식또한 4500명의 하객이 참석하였고 나다스디 집안으로부터 신혼집을 차릴 성을 선물로 받게 됩니다.
그러나 그의 결혼생활은 결코 순탄하지는 않았습니다. 그시절 전쟁이 빈번하였기에 남편은 자주 전쟁을 떠나 집을 비우게 되었고 집안의 대소사는 전부 엘리자베스의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던중 남편이 전쟁으로 인해 사망하게 되고 엘리자베스는 자연스럽게 가문의 재산과 성 신분등을 고스란히 물려받게 됩니다.
그런 그는 나이가 먹게되면서 점점 성격이 삐뚤어지게 변하였고 하루는 하녀가 머리를 빗겨주다 머리 카락이 뽑히자 하녀를 때렸습니다. 그러자 하녀의 얼굴에서 피가 엘리자베스의 손목에 떨어지게 되었으며 순간 엘리자베스는 피가 떨어진 자리에 피부가 무척 탱탱해진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후로 부터는 하녀의 피를 뽑아 목욕을 했으며, 그 방법이 발목을 밧줄에 묶어서 거꾸로 매단다음 목을 따서 피를 받아 목욕을 하였습니다. 목욕으로 만족을 못해서 그녀는 직접 피를 잔으로 마시기도 하였으며 심지어 여자가 진짜 이쁘면 직접 목을 물어 뜯어서 피를 뽑아 먹었습니다. 그외에도 그녀는 말한마디 잘못하면 입을 꼬매 버리거나 도둑질을 하다 걸린 소녀의 몸에 꿀을 발라 온갖 벌래가 뜯어먹게 했다고 합니다.
이당시에 엘리자베스 바토리가 살해했다고 주장하는 여자의 수는 650여명 가까이 된다는 설이 있었습니다. 또한 큐브라는 영화를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그 영화또한 그녀가 행한 행위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어느 상자에 칼구멍을 뚫고 그사이로 칼을 하나씩 집어 넣어 몸을 찌르는 잔인한 물건은 그녀의 작품이였습니다. 결국은 바토리는 루르조 백작과 수사팀에 의해 체포되었으며 평생을 감옥에 살다가 죽었지요.
그녀가 죽은 사후에 100년이상 바토리의 이름을 거론하는것은 금지시 되었다고 하네요.
4. 빌리 더 키드 (1859~1881)
미서부시대에 악명이 높았던 킬러중 한명인 빌리더키드 입니다. 본명은 월리엄 헨리 맥카티였습니다.
뉴욕출생이였지만 캔사스로 이주하면서 아버지가 죽자 다시 뉴멕시코에 가서 살았습니다. 미서부 개척시대에 뉴멕시코주에서 활동하던 전설적인 총잡이였으며 16세 쯤에 자기 어머니를 희롱한 사람을 살해한후 5년간 무려 3명의 보안관과 총 20여명의 사람을 살해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1881년 보안관 팻 개럿에게 사살되어 뉴멕시코주 포트 섬너에 매장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재미난거은 빌리 더 키드를 사살한 보안관 팻 개럿은 사실 보안관이 되기전에는 빌리 더 키드와 같은 악당출신이였습니다. 그러나 서부 개척시대에서는 그것보다 총을 잘쏘면 마을 사람들로 부터 보안관에 발탁되기도 하였기에 팻 개럿은 1880년 11월 경에 뉴멕시코 링컨 카운티의 보안관이 되었던 것이였습니다. 그는 한때 빌리 더 키드와 함께 노략질한 적이 있기에 빌리 더 키드를 잡는데에 더 이점이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 뉴 멕시코 주지사는 루 웰레스였는데 그가 더 키드의 목에 500달러의 현상금을 걸어 놓은 상태였습니다. 위에 몇백명을 죽인 이들처럼 악당 정도는 아니지만 그 이면에 많은 일들이 있었기에 선정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에 대해 출판물로도 나와있으며 영화나 음악으로 소재가 활용될 정도 이니깐요...
5. 잭 더 리퍼 (19세기~ ?)
잭더리퍼 어린 시절에 영화로 보았던 무시무시한 연쇄살인범..19세기말 빅토리아 후기에 영국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은 희대의 인물이였습니다. 근대 사회의 최초로 매스컴에 파장을 일으킨 연쇄살인 스타였습니다. 창녀만 골라서 잔인하게 살해 하였습니다. 그는 8월31일 부터 11월8일 약 3달에 걸쳐 5명의 여자를 살해하였는데요 . 그중 살해 하려고 하던중 사람들이 오자 달아난 것을 제외하고는 5명의 시체의 배를 갈라 내장의 일부를 꺼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살해한 메어리 켈리의 경우엔 거의 인간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정도로 잔혹하게 살해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그는 홀연히 살인을 멈추고 사라졌다고 합니다.그렇게 홀연히 자취를 감춘 그의 뒤에는 많은 말들이 전해지고 전해졌습니다. 어떤이는 자살했다. 또 어떤이는 유태인이다. 클랜런스 공작이다 앨버트 빅터 왕자다 등등의 많은 이야기만 남겼습니다. 그중 목격자를 통해 남겨진 몽타주 이외에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채 조용히 사람들에게 신비감을 안겨주었습니다.그럼 그가 과연 5명만 죽였을까요? 그의 잔혹한 범죄의 형태를 봤을때는 발견되지 않은 시신을 비롯하여 더많은 살인이 있었을꺼란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 시기에 실종 처리된 사람이 400명이 넘어섰다고 하니깐요. 그의 살인수법은 굉장히 치밀하고 계획적이라고 한답니다. 사실 잭더리퍼도 본명이 아니라 "잭은 처음 경찰이 나섰을때 희생자, 더 리퍼는 그 살인이 일어난 소도시 명칭입니다.
6. 라스푸틴(1872~1916.12.30)
러시아의 사제로 흔히들 미친 사제라고 합니다. 알개 신부였던 라스푸틴이 황실의 자레에 오른건 차르의 아들을 불치병에서 치료했기 때문인데요. 그는 매우 독실하고 신실한 사람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권력욕이 굉장했으며 남의 실패를 자신의 성공으로 생각하는 그런류의 사람이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집을 건설하기 위해 수십명의 농노를 구매하였으며 그중 부상을 당한 사람을 아무도 모르게 죽였다고 합니다. 그의 권력이 커지자 왕족들도 그를 시기하기 시작하였으며 그가 암살당한 계기가 된 사건이 바로 왕족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평소 죽은 왕족과 사이가 나쁜 라스푸틴이 암살했다 생각한 왕족들은 라스푸틴을 죽이고 강에 빠뜨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얼마후 라스 푸틴의 예언이 세상에 공개되었는데요. "나는 1917년 1월1일이 되기전에 세상을 떠날것이다. 만약 날 죽인 사람이 황제와 가까운 사람이라면 황제의 가족은 누구를 막론하고 2년안에 죽을것이다"라는 예언을 남겼습니다.
라스푸틴이 죽은것은 1916년 12월17일이였는데 그때 라스 푸틴을 죽인 유스포프는 황제 니콜라이 2세의 조카 이리나의 남편이였으며 황제와 가까운 인물이 였습니다.결국 1917년 3월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며 니콜라이 2세는 황제 자리에서 물러났으며 1918년 7월 가족과 함께 사형당하였습니다.또한 그에겐 특별한 능력이 있었는데 그것은 평소에는 30cm, 발기시에는 50cm가 넘는 남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많은 귀족 여성들이 밤마다 그로 인해 향락의 쾌락으로 죽음 직전까지 몰아 넣었다고 합니다. 흠..... 라스푸인이라는 이름도 러시아 말로 "방탕한 사람"이란 뜻입니다. 이처럼 그는 밤마다 러시아 사교계를 휩쓸며 처녀 유부녀를 가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현재 그의 상징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자연사 박물관에 보관하고 있습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을 죽인것은 아니지만 악마와 계약을 맺었다고 하며 살인마라고 한답니다.
뭐 우리나라만 봐도 더 잔인한 연쇄살인마가 많죠.. 세상이 살기가 좋아지고 문명이 발전하여 삶이 편해지고 있지만 악의 근원인 범죄자들 또한 더욱더 잔인해지고 지능화 되고있으니 앞으로 내 자식이 살아가는 세상이 어떨지가 심히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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