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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Issues

실존 북파공작원,소년북파공작원에 대해서

노바지 둥둥이 2015. 3. 28. 23:16

북파공작원(北派工作員)은 대한민국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로 비밀리에 파견했었던 공작원이다. 이들은 각 군별 본부의 정보국에 소속하였으며, 특수임무수행자라고도 불린다.

 

 

 

대한민국 정부는 1953년 한국전쟁 휴전 이후로 1972년 7월 남북공동성명까지 1만명을 넘는 공작원을 북한에 보내, 7,726명을 실종처리했다. 과거에는 북파공작원들의 근무사실조차 부정되었으나, 2002년 북파공작원의 존재를 인정하는 법원 판결이 최초로 내려지고 북파공작원을 국가유공자로 우대하는 관련법안의 개정안이 통과되었습니다.

전쟁동안 뿐 아니라 휴전 이후에도, 남한과 북한은 서로에게 비밀 작전을 수행하는 요원을 지속적으로 파견하였다. 육군은 1950년 7월 육군본부 정보국 공작과 (Headquarters of Intelligence Detachment; HID)를 발족시켰고, 1951년 3월에 이를 첩보전담부대로 독립시켰다.[2] 해군은 조선인민군 해군의 도발과 선박 피랍에 대응하기 위해 1954년에 UDU (Underwater Demolition Unit)를 창설했다. 그리고 공군도 1954년에 첩보부대인 20특무전대(=2325부대)를 창설했다. 육군의 HID는 1961년에 AIU (Army Intelligence Unit)로 부대명을 바꾸었고 다시 1972년에 AIC (Army Intelligence Command)로 부대명을 변경하였다. 하지만 정식명칭의 변경과는 무관하게, 최초의 부대명인 HID라는 이름이 오늘날까지도 사실상 대내외적으로 통용되고 있다.

 

이외에도 소년 북파공작원 또한 모집후(?) 소년병들을 이용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예전 국가의 잔혹성이 고스란히 보입니다.

이들 상설 북파부대 외에도, 1968년 북한 124부대의 청와대 기습 이후, 이에 대한 보복을 위한 목적으로 육군에 선갑도 부대, 해병대에 MIU, 공군에 684 부대(209파견대, 일명 실미도 부대)를 새로 창설하였다. 이들 보복부대들은 보복임무를 위한 훈련을 마치고 출동 명령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며 대기하고 있었지만, 그 사이 남북간의 정치관계가 화해무드 분위기로 바뀌면서 당초의 보복계획이 사실상 백지화 되었고, 그에 따라 존재목적이 없어진 이 보복부대들은 해체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중 공군의 684부대원들은 해체에 저항하여 1971년 8월 23일 간부들을 살해하고 버스를 탈취하여 공군 본부를 폭파하기 위해 상경하였으나, 출동한 육군에 의해 대부분이 사살되고 생존자들은 군사 재판에 의해 사형에 처해지면서 부대가 비극적으로 해체되었다. 이후 나머지 두 보복부대(선갑도 부대 및 MIU)도 차례로 해체되었다. 이로부터 30여년이 지난 2003년에, 684부대를 소재로한 영화 실미도가 개봉되어 북파공작원이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1972년 7·4 남북 공동 성명 이후,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양측은 공작원 파견을 자제하기로 성명함으로써 그 후로는 공작원을 파견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공식적으로는 알려져 있다. 1990년에 각군의 모든 대북첩보부대(육군의 AIC, 해군의 UDU, 공군의 20특무전대)가 국군정보사령부로 통합되었다.

북파공작원은 그 임무의 특수성으로 인하여 계급과 군번이 없다. 공작 임무를 수행하는 도중 적에게 잡혔을 때를 대비하기 위해서이다. 군번으로 소속부대 및 임관구분, 주특기 등을 알 수 있기 때문이며 계급으로 해당 공작원이 하는 임무의 비중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계급이 높을수록 임무의 중요성이 커진다.) 이 때문에 북파공작원은 서류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군인으로서 군복무를 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