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편 물가의 개념
화폐의 가치를 나타내는 물가
물가(prices)란 경제생활에 필요한 여러 가지 상품의 가격을 적절히 평균해서 종합한 것을 말한다. 상품의 가격이 오르면 돈의 가치는 떨어진다. 오르기 전의 가격으로는 그 상품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물가가 오르면 화폐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가는 한 나라의 경제현상이 어떻게 변하는지 나타내는 신호등이라 할 수 있다. 경기가 나빠져 침체되면 소비자들은 상품의 구매를 자제하게 되므로 수요가 줄어들고 이에 따라 물가도 내린다. 그러나 경기가 회복되어 상승하게 되면 상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여 물가가 오른다. 이렇게 물가는 경제의 흐름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
그렇다면 물가는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 물가의 변화를 종합적이고 객관적으로 나타내려고 만든 것이 물가지수(price index)이다. 물가지수는 어떤 기준시점의 가격을 100으로 하여 비교하려는 시점의 가격을 백분비로 표시한 것이다. 물가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모든 상품의 가격을 측정하여 물가지수를 계산해야 한다. 물가지수는 돈의 가치가 어떻게 변하는지 측정하는 수단이 되기 때문에 모든 상품의 가격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상품의 가격을 조사하여 반영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국민이 경제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큰 영향을 미치는 일부 상품의 가격을 가지고 물가지수를 계산한다. 물가지수를 계산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부분의 나라에서 라스파이레스식(Laspeyres formular)을 사용한다. 물가지수는 기준년도에 어떤 상품을 구입하는 데 지출한 금액과 비교년도에 같은 상품을 구입하는 데 들어간 금액을 비교해서 나타낸다.
일반적으로 통계 기관에서 발표하는 물가지수와 소비자들이 느끼는 물가와는 차이가 난다. 이것은 다양한 경제생활을 영위하는 소비자들의 물가에 대한 느낌이 다르기 때문이다. 물가지수는 각 상품별로 국민경제 전체에 미치는 중요도에 따라 가중치를 두어 계산하는데, 일반 소비자는 자신들이 주로 사용하는 상품에 대한 가격변동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단순하게 계산하기 때문이다.
또한 지출하는 비용에 대한 느낌도 개인적으로 다르다. 물가지수는 상품가격의 변화를 나타낸 것으로 상품의 가격이 올라 물가가 오르고 생활비가 증가할 수도 있지만 가족수가 증가하거나 자녀가 성장하면서 추가적으로 지출되는 비용, 또는 여가생활의 증가로 지출되는 비용 등에 의해서 생활비가 늘어날 수도 있다. 즉 물가상승에 따라 지출이 증가하는 것과 가계의 상황에 따라 지출이 증가하는 것을 착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소비자들의 주관적인 느낌에 의해 물가지수와 체감물가가 다르기도 하지만 물가지수를 소비자들의 체감물가와 똑같이 계산하기에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한계도 있다.
물가지수로는 우리가 흔히 접하는 생산자물가지수(producer price index/PPI), 소비자물가지수(consumer price index/CPI) 이외에도 수출입물가지수, GNP환가지수 등이 있다.
일반 가계의 생계비와 구매력을 측정하는 소비자물가지수(CPI)
소비자물가지수(consumer price index/CPI)는 소비자가 구입하는 상품의 가격이 어떻게 변하는지 측정하기 위해서 만든 물가지수이다. 소비자물가지수는 소비자가 구입하는 상품에 대한 물가변동을 파악하여 도시에 사는 가계의 평균적인 생계비와 상품에 대한 소비자의 구매력을 측정하기 위해 사용된다.
소비자물가지수는 소비에 대한 지출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토지나 주택을 구입하는 것과 같이 투자를 목적으로 하는 지출은 제외된다. 또한 소득이 높아져 고급 상품을 구입한다거나 가족수가 늘어나고 자녀가 성장하면서 구입품목의 양이나 질이 달라지는 것에 따라 추가되는 생활비 등은 소비자물가지수에서 제외된다. 소비자물가지수는 소비지출 중에서 물가의 변동만을 측정하기 때문이다.
소비자물가지수는 어떤 특정한 계층의 물가수준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평균적인 가구의 물가지수를 나타낸다. 또한 한 가구의 소비생활에서 발생하는 가격변동분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고, 원자재나 자본재 등을 제외한 소비를 하기 위해 지출되는 모든 재화와 서비스의 가격변동을 종합적으로 측정한다. 특히 소비자물가지수는 농어촌에 사는 가구는 제외하고 도시에 사는 가구의 물가수준 변동을 측정한다.
소비자물가지수와 비슷하게 사용되는 지수로 소매물가지수(retail price index)와 생계비지수(cost of living index)가 있다. 소매물가지수는 소매상에서 소비자에게 판매되는 물가를 나타낸 지수를 나타낸다. 소매물가지수는 유형의 상품뿐만 아니라 무형의 서비스까지 포함한다.어떤 가구가 생활하기 위해서 구입하는 물가를 나타내는 소비자물가지수와는 차이가 있다. 또한 생계비지수는 어떤 가구에서 일상생활에 필요한 비용, 즉 생활비의 변동을 파악하는 것으로 상품의 가격변동 이외에도 가족수가 증가하거나 소비구조 및 소비수준의 변동에 따른 가계의 소비지출변동도 포함된다.
대량거래에 의한 가격변동을 나타내는 생산자물가지수
생산자물가지수(producer price index/PPI)는 기업간에 거래되는 서비스를 제외한 1차 거래단계에서 나타나는 모든 상품의 평균적인 가격의 변동을 측정하는 것으로 도매물가지수라고도 한다. 흔히 ‘도매’라는 용어는 도매상이나 대리점에서 다른 중간상에게 판매하는 것으로 쓰이지만 여기서의 ‘도매’란 기업이 상품을 생산하고 1차적으로 출하하는 생산자 단계의 판매를 말한다.
생산자물가지수를 계산할 때의 가격은 부가가치세를 제외한 생산자 판매가격(공장도 가격)을 기준으로 한다. 생산자물가지수는 모든 상품의 수요, 공급 상황을 파악하거나 경기의 동향을 판단하는 지표로 사용된다. 그러나 생산자물가지수는 서비스 등과 같은 무형의 재화를 포함하지 않기 때문에 서비스의 비중이 높아질수록 적용시키는 데 문제점이 있기 때문에 총체적인 물가수준의 변동을 측정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장바구니의 무게를 나타내는 생활물가지수
소비자들이 물가의 변동을 가장 먼저 느끼는 곳이 시장이다. 통계청에서 발표하는 물가지수를 가지고는 도대체 물가가 얼마나 변했는지 쉽게 가늠할 수 없지만, 반찬거리나 생필품을 사러 시장에 나가보면 물가의 변동을 몸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물가를 나타내기 위한 지표가 생활물가지수이다. 생활물가지수는 소비자물가지수의 보조지표로 사용되는데, 일상생활에서 소비자들이 자주 구입하는 생활필수품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지표이다. 생활물가지수에 반영되는 품목은 쌀, 쇠고기, 라면, 과일, 학원비 등과 같이 생활에 가장 필요한 품목이나 가격변동에 민감한 품목 등이다.
제 2 편 인플레이션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는 원인
인플레이션(inflation)이란 물가의 수준이 지속적으로, 그리고 현저히 상승하는 것을 말한다. 물가는 오르락내리락 하게 마련이다. 어떤 상품의 가격이 오르는 대신 다른 상품의 가격은 내리는 경우도 있고, 어떤 상품은 주기적으로 가격이 오르고 내리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을 인플레이션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물가가 오른다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이러한 현상이 지속적으로 크게 나타날 때 이를 인플레이션이라고 한다.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총수요가 총공급을 초과하면서 발생하는 현상을 수요견인 인플레이션(demand-pull inflation)이라고 한다. 가계의 소비수요, 기업의 투자수요, 정부의 지출수요, 외국에 대한 수출수요 등과 같은 총수요가 늘어나 총공급을 초과하게 되면 가격이 상승하게 되어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 이러한 경우 상품의 생산수준이 일정한데 돌아다니는 돈의 양이 크게 증가할 때도 발생한다.
임금, 원자재 등의 가격이 올라 이로 인해 생산비가 증가하게 되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 그러나 임금이 오르고 원자재의 가격이 상승한다고 해도 제품 하나를 만드는 데 드는 평균노동비용이 상승하지 않으면 제품의 가격이 오르지 않으므로 이런 경우에는 인플레이션이 일어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기업의 생산비가 증가하게 되면 이윤이 감소하고 따라서 기업은 이윤을 확보하기 위해 상품의 가격을 올리게 된다. 이러한 현상이 경제 전체에 파급되면 물가가 오르게 된다. 이렇게 물가가 오르는 원인을 공급으로 보는 것을 비용인상 인플레이션(cost-push inflation)이라고 한다.
인플레이션의 영향과 대책
인플레이션은 경제 전체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을 예상할 수 있다면, 아니 예상하고 있다면 커다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만약 몇 년 동안 매년 물가가 20%씩 올랐다면 사람들은 항상 이 정도의 물가상승을 기대하고 행동할 것이다. 임금도 20%의 물가상승을 감안하여 결정할 것이고 이자율도 물가상승률을 감안해서 결정될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경우에는 모든 재화나 서비스의 가격이 예상되는 인플레이션을 반영하여 결정되기 때문에 단지 화폐의 단위가 바뀐 것과 같은 현상이 된다. 결국 경제적인 의사결정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장래에 인플레이션이 일어날지 일어나지 않을지 알 수 없다. 예상하지 못했던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봉급생활자들은 오른 물가가 월급봉투에 고려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임금이 하락한 셈이 된다. 채무자 역시 이자율이 오르지 않았으므로 손해를 본다. 이와 반대로 채권자와 기업은 오히려 이익을 보게 된다. 또한 저축의 경우 주로 화폐의 가치가 고정되어 있으므로 사람들은 저축을 하지 않고 물가상승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부동산이나 귀금속 등을 구입하려고 하며 이로 인해 투기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인플레이션으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기 때문에 장기적인 투자를 꺼리게 된다. 이렇게 되면 장기적으로 공급이 감소하게 되는데, 공급이 감소한다는 것은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장기적인 공급감소로 인해서 인플레이션이 지속된다.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국제수지가 악화된다. 물가상승률이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으면 수출품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증가하므로 결국 상품의 가격이 올라간다. 따라서 수출품의 가격이 높아지므로 수출이 줄고, 이와 반대로 수입품의 가격은 상대적으로 싸지게 되어 수입은 증가한다.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경제사회에 커다란 문제가 생긴다. 따라서 정부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여 실시하곤 하는데 주로 수요의 측면에서 대책을 세운다. 중동의 산유국들이 석유값을 대폭으로 올리게 되면 이는 정부로서도 어쩔 수 없다. 즉 공급의 측면에서 비용인상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은 정부가 대책을 세우기 어렵다. 그래서 주로 금융정책이나 재정정책을 통해서 인플레이션을 억제한다. 물가가 급격히 오르면 정부는 통화량을 조절하거나 사치업소에 대해 높은 세금을 부과하는 등과 같은 대책을 시행한다.
불황에도 물가는 올라간다
전통적으로 인플레이션은 초과수요에 의해서 발생했다. 수요가 많아지면서 물가가 오르고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1970년대에 석유파동으로 생산비가 급증하자 생산이 침체되고 총공급도 감소했다. 생산과 고용이 현저히 감소했지만 총수요는 그 전과 같은 수준이었기 때문에 결국 불황 속에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게 되었다.
생산과 고용이 감소하면 총수요도 감소하여 물가가 떨어져야 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가 된 것이다. 즉 인플레이션의 원인이 초과수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생산비의 증가에 있었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인플레이션 현상과는 달리 경기가 침체되어 생산활동이 위축되고 고용이 크게 감소했음에도 인플레이션이 지속되는 현상을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라고 한다.
보통 경기가 침체되면 실업률이 높아지고 수요가 감소되어 물가가 떨어진다. 물가가 하락하면 임금상승률도 하락한다. 반대로 경기가 호황이면 실업률이 낮아지고 수요는 증가되어 물가가 올라간다. 또한 물가가 상승하면 임금상승률도 상승한다. 결국 임금상승률이 낮으면 실업률이 높고 임금상승률이 높으면 실업률이 낮아지는데, 이러한 관계를 나타낸 것이 필립스곡선이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하면서 필립스곡선의 한계가 드러나게 되었다.
디플레이션
디플레이션(deflation)은 물가의 수준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상태를 말하는데, 인플레이션과 반대의 개념이다. 상품의 가격은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따라 움직이는데 공급에 비해 수요가 너무 적어 생기는 현상이다. 소비가 위축되어 사람들의 구매력이 떨어지면 기업이 생산한 제품은 팔리지 않는다. 결국 기업은 생산설비와 생산인력을 줄이게 되고 그 결과 실업자가 늘어나며 경기는 불황으로 빠져든다. 불황이 되면 기업이나 사람들이 은행에서 돈을 대출 받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금리는 떨어진다. 디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 물가뿐만 아니라 임금, 부동산, 증권 등이 모두 하락하는 경우가 많다.
디플레이션은 주식이나 부동산 등과 같은 자산가격이 폭락하고 상품의 가격이 하락하면서 전개된다. 물가지수가 하락하고 실업이 급증하며 경제상황이 최악으로 변한다. 이렇게 디플레이션이 시작되면 물가가 하락하여 실업이 증가하고 임금이 하락하며, 수요가 줄어 상품가격이 다시 하락하여 물가가 떨어지는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 1930년대 대공황기에 미국은 최악의 경제상황이 계속되었으며 1990년대 일본의 경제도 거품이 사라지면서 불황에 빠져 장기간 후유증에 시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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